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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0일 토요일

누군가를 위한 흔적

 누군가를 위한 흔적



 시작할 때 지었던 블로그 이름인 '존재의 흔적'을 '누군가를 위한 흔적'으로 바꾼다.


 "이 블로그는 그에 대한 기록이며, 
  내가 살아있음을 적극적으로 자각하고 표현하기 위한 존재의 흔적이다."
  (http://sotgui.blogspot.kr/p/blog-page.html)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내가 블로그를 시작했던 이유는 나 자신을 위해서였다.

이 블로그 전에도 몇 번의 개인 블로그 활동을 시작하고 접었던 경험이 있지만, 그 때에도 내게 있어 블로그를 하고자 하는 마음, 욕구, 그 블로그 활동의 의미는 온전히 나 자신을 향해 있었다.

 마치 블로그처럼 어떤 공간을 통해서 글을 쓰지 않으면... 내 생각을 남기지 않으면... 내가 살아있는게 살아있는 게 아닌 것 같았고, 또 그 흔적들이 없다면 세월이 흘러가면서 내 존재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스러 없어질 것 같은 위기감의 표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블로그에서 내가 선택한 제목은 '존재의 흔적'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글을 쓴다는 행위, 그리고 블로그와 같은 매체를 통해 그것을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간에 옮긴다는 것은 그 의미가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사소한 생각 일지라도 그것을 글로 옮긴다는 것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질 것을 염두해 둔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답답한 마음을 토로해 낸 비밀일기라면 이야기가 다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 일기마저도 자신의 심정을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환희와 아픔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적는 것일텐데 이는 자신만을 위한 행위라기 보다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의 반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은 쌍방향 매체이기 때문에 블로그는 끊임없는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다.
 또 그것이 블로그라는 매체를 아직까지도 유의미하게 만드는 특성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껏 소통이 없는 블로그를 해왔다.


 예전에 블로그나 SNS를 할 때 늘 마주쳤던 문제가 있다.

 내가 느낀 것과 경험한 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고 또 좋은 정보는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곤 했지만, 사람들이 내가 쓴 글에 피드백을 주며 다가올 때면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면서 '쓰지 말 걸', '이거 그냥 지울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특히나 사람들이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주거나, 내가 쓴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공감하지 못하면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또, 내 과거나 일상에 관한 내용을 적다가, 민감하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을 공개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많은 부분을 미화하고 포장하는 경우가 있었다.
 (웃긴 점은 그런 민감한 부분을 아예 적지 않는 것보다는 그렇게 왜곡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는 것)

 그런 행동은 현실의 나와 블로그 글 속에 표현된 나 사이에 큰 간극을 만들었고, 나는 공개적인 곳에 글쓰기하는 것을 점점 두려워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마음들은 나 자신만을 위해 글을 쓸 때 나타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내가 쓴 글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어갈 지 모르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고, 또 누군가는 어떤 삶의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얻어갈 수도 있다. 그 누군가가 나에 대해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일 수도 있고, 혹은 생판 모르는 먼 동네에 사는 사람, 그저 인터넷에 관심사를 검색하다가 내 블로그를 들어온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 자신만을 위해 이른바 내 '존재의 흔적'을 남길 때는 그 누군가가 내 존재를 알아주는, 내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는, 관찰자, 관객에 불과하게 된다. 나와 내 생각, 일상에 대해 일방적으로 늘어놓는 수다를 그들이 들어주는 것이고, 글쓴이는 듣는 쪽에서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소통이 전혀 없는 행위이며 그저 일방적인 이런 얘기를 들어주는 쪽에 정말 감사해야 되는 경우이다.

 만약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쓴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인생에 대한 경험이나 지혜를 얘기할 때, 자기연민은 접어두고 이 글을 읽을 누군가를 위해 조금 더 솔직하게 꼭 필요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또한 어떤 정보를 공유할 때도 상대방에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인지 조금 더 신중히, 듣는 이의 주파수와 눈높이에 맞춰 글을 쓰게 된다.

 '이 글을 통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글을 쓴다면 글에 버릴 내용이 없게 된다. 나 자신을 위한 내용보다는 타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필요없는 내용일지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도움되는 내용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내가 읽고, 남들에게 일방적으로 읽기를 강요하는 글쓰기를 할 때와는 긍정적인 파급력이 차원이 다르다.



 나는 앞으로 '누군가를 위해 흔적을 남긴다'는 생각으로 이 블로그를 해 나갈 것이다.
골방에서 혼자만의 일기를 쓰고, 개똥철학을 늘어놓는 고립된 모습이 아닌,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읽기 쉽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글쓰기를 할 것이다.

 나의 존재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을 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에게 존재감을 확인 받으려는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욕심이 아니라, 상대에게 조건없이 나의 시간을 내어주면서 먼저 다가갈 때 가능한 것이리라.



 이제 나는 '누군가를 위한 흔적'을 남긴다.

2014년 7월 18일 금요일

나의 성(姓)과 사랑 (1)

 140718. 

 성(姓)이라고 하면 굉장히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것 같고, 사랑이라고 하면 뭔가 드라마와 같은 낭만을 얘기하는 것 같다. 하지만 둘은 모두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을 지속적으로 인식하고 육체적 욕망과 정신적, 심리적인 욕구, 그리고 현실의 문제를 종합하여 내가 바라는 이성상을 그려보아야 한다.

 나도 남자인지라 아침에 일어나면 주체할 수 없는 힘(?)을 어쩌지 못해 정신까지 산만해지기도 하고, 밖으로 나서면 여기저기 이쁜 처자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남자로서의 본능때문에 시시각각 눈알을 굴리곤 한다. 그러면서도 이것을 스스로 억누르려고 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관심과 에너지를 돌리고 싶은 마음을 간절히 품어 보지만 이내 실패하곤 한다. 많은 이들이 건전한 운동이나 몰입할 수 있는 취미로 이 욕구를 해소하라고 한다. 혹은 지금 당장 이성과 진짜 사랑을 하며 교감을 하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면 그보다는 조금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이렇게 이성에 대한 욕구를 억누르는 것은 옳은 일인지,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은 정말로 대안인지, 내가 생각하기에 내 성적 욕구에는 부자연스럽고 습관적인 사회적, 심리적 동기도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를테면... 사회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성적 욕구에 더 음성적으로 접근하고 생각한다는것?) 이는 정말로 타당한 생각인지, 단순한 성적 욕구를 넘어서 내게 진짜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에 더하여 조금 더 전문적인 지식과 주변의 조언을 바탕으로 나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싶다. 

 사랑이란 아마도 육체적인 욕구를 포함하여(이성과의 사랑의 경우) 정신적, 심리적, 정서적, 사회적, 이러한 인간이 바라는 다양한 욕구와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묶어주는 연결고리 같은 관계일 것이다. 아니 그저 사랑은 사랑일 뿐이다. 궁극적인 사랑은 이러한 관계들이나 수식어들을 저 하늘로 날려버리고 모든 경계를 사라지게 하는 마법 같은 것일테다. 앞으로 글을 쓰면서 여러가지에 대해 얘기하겠지만 성과 사랑은 머리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다는 가정을 하고, 모든 것에 단언하지 않는 태도를 견지할 것이다.

2014년 7월 4일 금요일

'나'와 잠 - 내게 필요한 수면 습관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과 숙면을 취하는 것, 이른바 꿀잠을 자는 것과는 어떤 상호 관계가 있을까?


 나는 지난 26년 동안 살아오면서 내 의지대로 잠을 자고 깬 적이 별로 없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마법처럼 잠이 들어 하루를 마감하고, 또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마법처럼 깨어서 하루를 시작하는 삶. 어찌보면 모든 사람들이 숙면에 대해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자유의지대로 자신의 생활리듬을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다. 역설적으로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몸은 기계처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방식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나'에 대해 올바르게 알기,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내게 맞는 수면 습관을 적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음의 몇가지 사항은 나 자신의 숙면을 위해 내리는 적합한 지침이다. 이는 과학적으로 뒷받침 될만한 근거는 부족할 지 모르나, 경험으로부터 얻은 나름의 지혜나 다름없으니 잊어버리지 말고 잘 참고해보도록 하자.


 1. 늦게 잠이 들거나 잠이 잘 오지 않더라도 불안해하지 않는다.

 나는 자정이 넘어서도 잘 잠이 오지 않는 편이다. 집에서는 부모님을 따라 자정이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 잠이 오기를 청해보지만,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편안한 자세를 찾으려는 노력과는 반대로 머릿 속은 계속 깨어 있다. 그럴 때면 왠지모를 불안감이 엄습하곤 하는데, 보통은 잠이 들지 않으니 아침에 늦게 일어날 것이라는 걱정과, 늦게 일어나서 하루의 시작을 짜증으로 시작할 것 같고, 미리 세워 둔 계획에도 차질이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잠이 오지 않으면 여러가지 고민과 같은 생각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급기야는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기도 한다. 모든 생활을 스스로 해야 했던  자취 기간에는, 밤이면 침대에 누워 내 맘처럼 안되는 어제에 대한 후회와 내일에 대한 불안을 느끼곤 했다. 그렇게 종종 밤을 꼴딱 새기도 했다. 하지만 잠자는 시간은 마음이 가장 편하고 근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다. 긴장을 풀고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마저 마음처럼 안된다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잠이 잘 오지 않더라도 '오늘은 몸이 덜 피곤한가 보구나'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되는 것이다. 머릿 속에도 여유와 휴식을 줄 때 비로소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2. 잠들기 전 뇌를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잠들기 전에 어느정도의 몸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데, 이를 어렵게 하는 자극적인 행동은 피해야 한다. 먼저 자기 전 2~3시간 전에는 야식과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다. 먹더라도 맵고 짠 것이 아니라 과일과 같은 먹거나 물을 많이 마셔주는 것이 낫다. 무언가를 먹고 잠에 들면 자는 동안 그것을 소화해야 해서 몸이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고, 아침에 일어날 때도 몸이 찌뿌둥한 듯이 무거운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속이 안 좋아 아침식사도 거르게 된다. 먹는 것 말고도 컴퓨터 게임이나 무의미한 인터넷 서핑, TV시청 등도 뇌를 자극하고 긴장하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밤에 하는 운동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해야 한다. 잠들기 전에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것도 잠을 방해하는 중대한 요인임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이런 자극적인 행동들은 잠이 안와서 불안할 때 찾기도 하는 데, 잠이 안 온다고 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면 더 잠이 안오며 결국 밤을 새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내 몸과 마음을 잘 돌아보고 자각하면 그런 행동들은 사실 필요하지도 않다. 


 3. 잠들기 전 독서는 자연스러운 취침을 유도한다.

 무의미한 TV시청, 인터넷과는 반대로, 잠들기 전 독서는 자연스러운 취침을 유도한다. 나는 낮이던 밤이던 줄곧 누워서 책을 읽곤 하였는데 책의 장르와 내용과는 관계없이 잠이 솔솔 오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실제로 자기 전 머릿 속을 정리하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 일기를 쓰는 것보다 독서하는 것이 더 유용할 때가 많았다. 일기를 쓸 때는 오히려 여러 가지 상념에 빠져 들어 새벽을 꼴딱 새도록 하기도 하지만 독서는 나 자신의 상념에서 벗어나 머릿 속을 정리하게 해준다. 독서는 뇌를 스트레칭하듯이 이완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 얘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머리 맡에 편안히 읽을 수 있는 책을 두고 잠자리에 들도록 하자.

 4. 새벽형, 아침형 인간이 되려 애쓰지 말고 하루의 스케쥴에 맞추어 여유롭게 기상한다.

 나는 사춘기가 오기 전 어렸을 적부터 자정을 넘어서 자는 적이 많았다. 보습학원을 다녀온 후, 나보다 늦게 귀가하는 형을 기다리면서 컴퓨터 게임을 하곤 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야자가 끝난 후 이어지는 기숙사 자습시간 때문에 늦게 잘 수 밖에 없었다. 거의 한 시를 넘어 자곤 했던 10대 시절을 지난 내게는 아직도 그 습관들이 체질로서 남아 있는 듯 하다. 스무 살 넘어 군복무 시절을 제외하고는 항상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던 나, 아르바이트도 밤이나 새벽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런 나에게 새벽형, 아침형 인간에 대한 관심은 모순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입시 시절과 함께 자기계발적 서적들을 가까이 했던 내게는 새벽 4시 반에서 6시 반 사이에 기상하며 독서로 아침을 깨우고, 묵상과 계획표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이 로망에 가까웠다. 돌이켜보면 참 그 얼마나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들과 같은, 혹은 그렇게 가르치는 책들과 달리 그런 습관을 갖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고 나는 줄곧 스스로의 게으름과 낮은 의지력을 탓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내가 어떤 생활 리듬을 갖고 있는지 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인다. 나는 아침형이나 새벽형 인간은 아니다. 그렇다고 밤에 활발한 올빼미 인간도 아니다. 밤 9시가 되면 피곤을 느끼지만 할 일을 마치고 난 뒤 자정이 되어서야 잠이 드는 것이 마음 편하다. 새벽 6시 반에 의무적으로 맞춰 놓은 알람은 듣지 못하지만 7시 반이나 그 이후는 꼭 일어나야 하는 일이 있다면 일어나고야 만다. 무리하게 일찍 일어나려 애쓰는 것은 의미가 없고, 차라리 아침잠이 많은 나 자신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좋다. 많은 이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이유가 사실은 학교나 직장처럼 꼭 지켜야 할 시간과 약속때문이다. 나는 이제 '아침형 인간 = 부지런한 사람 = 성공하는 사람' 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깨고 내 체질과 생활 리듬에 맞는 숙면과 기상을 할 것이다.


 5. 아침 식사를 꼭 하도록 한다.

 옛말에 '배꼽시계'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몸은 평소의 습관대로 맞춰져 있다. 아침, 점심, 저녁 제때에 식사를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건강에도 좋은 일이다. 조금 먹더라도 아침 식사를 꼭 함으로써 아침이 경쾌하도록 하자. 또한 위에서 먼저 얘기했듯 저녁 이후 먹는 것을 삼가고 배를 공복으로 만든다면 아침에는 저절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2014년 6월 30일 월요일

세계의 시작과 끝

<세상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세상에 책임감을 가지고 당당한 생활실천>

 세계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내가 다른 무언가와 맺는 관계에서 세계의 모습은 형성되고, 변화한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책임을 가지고, 양심있는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이 공간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