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한 흔적

 ▼  7/1/2014

 포기하고 안주하기엔... 아직 젊다.

2014년 7월 1일, 스물 여섯의 청춘.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


 매 순간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는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 위에서,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고, 또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는 명백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내 양심에 견주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내 미래는 다음의 세가지 꿈을 향한다.

첫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한 분야의 전문가 되기(링크 -> 또 하나의 언어)

둘째, 강과 바다, 산이 만나는 곳에 가족을 위한 집 짓기.(링크 -> 하얀 종이 위의 집)

마지막으로, 세상 모든 것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세상에 책임감을 가지며 당당한
                  생활을 실천하는 것이다. (링크 -> 세계의 시작과 끝)

 (+한편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돈에 대해 제대로 알고, 공부하며, 이를 토대로 나만의 재무설계를 해나가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부자'가 되어 도덕적인 선을 지키며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은 네번째 꿈인 것이다. -14/7/18)
(링크 -> 부자가 되는 길)

이 블로그는 그에 대한 기록이며, 
 내가 살아있음을 적극적으로 자각하고 표현하기 위한 존재의 흔적이다.






 ▼ 9/21/2014

 누군가를 위한 흔적


 시작할 때 지었던 블로그 이름인 '존재의 흔적'을 '누군가를 위한 흔적'으로 바꾼다.


 "이 블로그는 그에 대한 기록이며, 
  내가 살아있음을 적극적으로 자각하고 표현하기 위한 존재의 흔적이다."
  (http://sotgui.blogspot.kr/p/blog-page.html)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내가 블로그를 시작했던 이유는 나 자신을 위해서였다.

이 블로그 전에도 몇 번의 개인 블로그 활동을 시작하고 접었던 경험이 있지만, 그 때에도 내게 있어 블로그를 하고자 하는 마음, 욕구, 그 블로그 활동의 의미는 온전히 나 자신을 향해 있었다.

 마치 블로그처럼 어떤 공간을 통해서 글을 쓰지 않으면... 내 생각을 남기지 않으면... 내가 살아있는게 살아있는 게 아닌 것 같았고, 또 그 흔적들이 없다면 세월이 흘러가면서 내 존재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스러 없어질 것 같은 위기감의 표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블로그에서 내가 선택한 제목은 '존재의 흔적'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글을 쓴다는 행위, 그리고 블로그와 같은 매체를 통해 그것을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간에 옮긴다는 것은 그 의미가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사소한 생각 일지라도 그것을 글로 옮긴다는 것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질 것을 염두해 둔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답답한 마음을 토로해 낸 비밀일기라면 이야기가 다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 일기마저도 자신의 심정을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환희와 아픔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적는 것일텐데 이는 자신만을 위한 행위라기 보다는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의 반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은 쌍방향 매체이기 때문에 블로그는 끊임없는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다.
 또 그것이 블로그라는 매체를 아직까지도 유의미하게 만드는 특성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껏 소통이 없는 블로그를 해왔다.


 예전에 블로그나 SNS를 할 때 늘 마주쳤던 문제가 있다.

 내가 느낀 것과 경험한 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고 또 좋은 정보는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곤 했지만, 사람들이 내가 쓴 글에 피드백을 주며 다가올 때면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면서 '쓰지 말 걸', '이거 그냥 지울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특히나 사람들이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주거나, 내가 쓴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공감하지 못하면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또, 내 과거나 일상에 관한 내용을 적다가, 민감하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을 공개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많은 부분을 미화하고 포장하는 경우가 있었다.
 (웃긴 점은 그런 민감한 부분을 아예 적지 않는 것보다는 그렇게 왜곡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는 것)

 그런 행동은 현실의 나와 블로그 글 속에 표현된 나 사이에 큰 간극을 만들었고, 나는 공개적인 곳에 글쓰기하는 것을 점점 두려워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마음들은 나 자신만을 위해 글을 쓸 때 나타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내가 쓴 글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어갈 지 모르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고, 또 누군가는 어떤 삶의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얻어갈 수도 있다. 그 누군가가 나에 대해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일 수도 있고, 혹은 생판 모르는 먼 동네에 사는 사람, 그저 인터넷에 관심사를 검색하다가 내 블로그를 들어온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 자신만을 위해 이른바 내 '존재의 흔적'을 남길 때는 그 누군가가 내 존재를 알아주는, 내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는, 관찰자, 관객에 불과하게 된다. 나와 내 생각, 일상에 대해 일방적으로 늘어놓는 수다를 그들이 들어주는 것이고, 글쓴이는 듣는 쪽에서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소통이 전혀 없는 행위이며 그저 일방적인 이런 얘기를 들어주는 쪽에 정말 감사해야 되는 경우이다.

 만약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쓴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인생에 대한 경험이나 지혜를 얘기할 때, 자기연민은 접어두고 이 글을 읽을 누군가를 위해 조금 더 솔직하게 꼭 필요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또한 어떤 정보를 공유할 때도 상대방에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인지 조금 더 신중히, 듣는 이의 주파수와 눈높이에 맞춰 글을 쓰게 된다.

 '이 글을 통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글을 쓴다면 글에 버릴 내용이 없게 된다. 나 자신을 위한 내용보다는 타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필요없는 내용일지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도움되는 내용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내가 읽고, 남들에게 일방적으로 읽기를 강요하는 글쓰기를 할 때와는 긍정적인 파급력이 차원이 다르다.



 나는 앞으로 '누군가를 위해 흔적을 남긴다'는 생각으로 이 블로그를 해 나갈 것이다.
골방에서 혼자만의 일기를 쓰고, 개똥철학을 늘어놓는 고립된 모습이 아닌,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읽기 쉽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글쓰기를 할 것이다.

 나의 존재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을 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에게 존재감을 확인 받으려는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욕심이 아니라, 상대에게 조건없이 나의 시간을 내어주면서 먼저 다가갈 때 가능한 것이리라.



 이제 나는 '누군가를 위한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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